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백의민족





동양에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주를 이해하는

남다른 세계관이 있었어요.

'음양오행'이라고 불리는 이 세계관에 따르면,

우주에는 수없이 많은 기운이 흐르고 있고,

이 기운들이 서로 만나 만물이 생겨나기도 하고

갖가지 현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음양'은 해와 달, 빛과 어둠, 낮과 밤, 남과여, 삶과 죽음처럼

서로 반대외어 짝을 이루는 기운을 말해요.

'오행'은 우주 만물을 낳게 하는 다섯가지 기본 물질이예요.


다섯가지 물질은 금,목,수,화,토를 가리킵니다.

오행은 저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어 

두드러지게 모이는 곳이 다릅니다.



오행이 자리하는 다섯 방위에는 특성에 들어맞는

색깔이 정해져있어요... 그색을 오방색이라고 하는데요.


그중 흰색은 대부분의 민족이나 지역에서 

태양빛으로 보았기 때문에 신성한 색으로 였습니다.

우리민족은 태양을 상징하는 흰색을 고귀하게 여겼다고 해요.

'희다'라는 말도 '해'에서 나왔어요..

우리 민족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흰옷을 즐겨 입은 것도 이런 까닭이지요.


중국의 옛 역사책에서도 2,000여 년 전부터 우리 민족은 

흰색 옷을 일상복으로 입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그런데 우리 민족이 흰색 옷을 입지 못한 때도 있었어요.

바로 중국 원나라의 간섭을 받던 고려 후기와 일본의 지배를 받던

일제 강점기예요.



원나라는 90년 가가이 고려를 지배했는데요. 

원나라는 고려가 중국의 동쪽에 있으니

음양오행에서 동쪽에 해당하는 청색 옷을 입도록 

국법으로 정하기까지 했어요.


일제 강점기에는 흰옷 입은 사람에게 검은 물총을 쏘거나 

붉은 물감을 칠하기도 했어요.

또 관청이나 시장 출입을 못하게 하고, 일자리를 주지도 않앗지요.

일본은 흰옷이 때가잘타서 자주 빨아야 하니 

비위생적이고 비경제적이라는 이유를 들었지만

실은 백의민족이라는 우리의 자존심과 정신을 짓밟기 위해서였습니다.



음...음양오행을 통해 백의민족인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잠시 살펴보았는데요.



‘의금상경(衣錦尙䌹)-  ‘화려한 문채의 비단옷을 무명의 홑옷으로 가린다’ 


<시경>과 <중용>에 나와있는 선비의 도리를 실생활에서도 수용해, 

부와 권력을 가진 이들이 사치를 경계하고, 

서민과의 위화감을 만들지 않으려는 세심한 배려가 있었어요. 

이런 유교적 의식이 사회 전반에 있었고, 

가공하지 않은 자연직물 색깔 그대로의 옷을 

오랫동안 입어온 풍속이 더해져 한국인 고유의 

백의문화로 자리잡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흰옥을 즐겨 입은 이유는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을 삶의 방식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민족의 옛 좋은 정신을 잊지않고 잘 이어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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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君子)

-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 인을 이룬다 -

공자 사상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군자(君子)가 되는 것'이고, 공자가 말하는 군자는 '인(仁)을 실천하는자' 입니다.


<논어>의 '계씨'편에는

"군자에게는 세 가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으니 

하늘을 두려워 해야 하고,

대인을 두려워 하야 하며, 

성인의 말을 두려워하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군자는 하늘이 내게 부여한 참다운 인간의 길을 가야 할 사명을 따르고

성인의 말씀을 존중해 따라야 한다는 의미 입니다.

이처럼 군자는 먼저 국가와 사회의 이익에 관심을 갖고

 의리에 밝으며 도덕적 품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특히 군자의 인은 '殺身成仁(살신성인)'의 정신입니다.

살신성인은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 인을 이룬다'는 

뜻으로 희생정신과 같은 의미 입니다.



진정한 군자란?


"군자는 재난 앞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아야 한다.

어려움이 부딪쳤다고 해서 뜻을 바꾸는 사람은 진정한 군자라 할수 없다"

어려움에 부딪치면 사람의 마음이 흔들립니다.

하지만 공자는 이런 사람은 진정한 군자라고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군자가 되기 위해선 인을 실천하는자가 되어야 하고

인을 실천하는것은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서 이루게 되니...

많은 인내와 노력을 통해 진정한 군자로 거듭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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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仁)

역사적 인물 2016. 3. 1. 16:47

인(仁)

- 배움보다 중요한건 실천이다 -



'인(仁)'은 공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가장 중심이되는 사상이며,

쉽게 이룰수 없는 최고의 덕목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도덕이나 윤리가 

바로 이 '인'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인의 의미를 공자가 처음으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공자는 인의 본래 의미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천했답니다.

인에 대해서는 <논어>의 여러부분에서 찾아 볼수 있는데요..

하지만 공자의 대답이 상황에 따라 다른 많은 뜻을 담고 있어 

그 숨은 뜻을 알아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인의 가장 큰 바탕이 되는 개념은 '사랑'입니다.

인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공자는 배움을 얻어 자신을 갈고 닦아 

실천하는 것의 기쁨을 강조하였는데요.

인을 실천하는 가장 기본적인 대상이 자기 자신인 것입니다.

다음은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에 대한 효도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첫 번째 단계로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 됩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나아가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인의 의미는 속마음에 간직한 도덕성이며 

남을 사랑하는 착한 본성이 바탕이 되어 드러나는 것입니다.


공자는 <논어>의 "이인"편에서

"오직 어진 사람만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미워 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인의 성격은 선악과 정사를 분별하는 차별적 사랑인 것입니다.


아울러 인의 실천은 내 마음을 미루어 남을 헤아리고

인간 관계에서 성실과 신뢰를 위주로 하는 것이며,

예(禮)를 통해 외면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욕심을 누르고 예의를 따른 다는 

극기복례(克己復禮)를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인데요..


또한 공자는 <술이>편에서 

"내가 인을 바라기만 하면 인은 바로 곁에 있다"라고 하여 

인을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를 강조하였습니다.



- 극기복례 -

욕심이나 거짓된 마음 등을 자기의 의지로 누르고

예의에 어긋나지 않도록 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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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최고 예언가 남사고 - 격암유록




남사고(南師古) 선생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천문·지리 등에 통달했다고 유명했다.

그리고 1977년 격암 남사고의 예언서 격암유록이 공개되면서 학계에 논란이 일었다.

 내용이 성경의 계시록과 너무나 유사했기 때문이다.


위서 논란이 있지만 남사고 선생이 남긴 격암유록은 선생이 당시 천신을 만나 

훗날에 있어질 일을 전해 듣고 기록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예언가로 알려진 남사고 선생을 조명해

천신이 우리 민족에게 무엇을 예언했는지 고찰한다.




격암은 선조 8(1575)의 동서분당(東西分黨)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 등을 명종 말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임진년에 백마를 탄 사람이 남쪽으로부터 나라를 침범하리라 예언했는데,

과연 왜장 가토(加藤淸正)가 백마를 타고 쳐들어왔다.

앞서 명종 19(1564)내년에는 태산(泰山)을 봉하게 되리라고 예언했는데,

이듬해에 문정왕후(文定王后)가 별세해 태릉(泰陵)에 장사지냈다.

 

격암은 풍수지리에 많은 일화를 남겨 그의 이름으로 된

도참서(圖讖書: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책)인 남사고비결(南師古祕訣)’

남격암십승지론(南格庵十勝地論)’이 정감록(鄭鑑錄)’에 전한다

 


남사고비결은 격암이 역리(易理)를 근거로 운수를 미리 헤아려서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 예언한 책으로 그의 호를 따서

격암유록(格庵遺錄)’이라고도 한다.

 

이 책은 자손들이 말세에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예시한 것으로 천기(天機: 하늘의 기밀)에 관한 책이라 하여

간행하지 않고 비밀리에 보관해 오다 8.15광복 후에 격암이

예언한 말세가 이르렀다고 생각한 자손들이 세상에 공개했다는 말이 있다.

 

내용 중 특이한 것은 미래의 시기나 사건의 중요성 등을

은어나 파자(破字), 속어, 변칙어 등을 사용해 보는 사람들이

내용을 분명하게 파악할 수 없도록 기록한 점이다. 



한일병합과 해방, 국토의 분단과 6.25전쟁공산주의의 발동 등을 예언했으며,

상제의 재림은 분명해 의심할 바 없으니 전심으로 합력·수도해야 한다거나,

복음전도가 급한 때이고 마음으로 천주(天主)를 믿지 않으면

지옥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하는 등 서학적인 의식도 짙게 나타나 있다.

 

또 세상 사람들에게 외치는 생명예언이라 하면서

인신(人神) 변화가 무궁하지만 상천시(上天時하강시(下降時)

잘 알아야 함을 강조하고 영웅호걸이나 박식한 철인이라도

시래(時來)를 알지 못하면 현명하지 못한 것이고

어리석은 남녀라도 시래를 알면 그것이 걸사라 했다.

 

우리나라가 동양에서 제일가는 강대국이 될 것과

이 땅이 세계의 십승지(十勝地)라고 하는 등

자국에 대한 자긍심의 면모도 나타내고 있다.



송구영신 호시절 만물고대 신천운

 送舊迎新 好時節 萬物苦待 新天運

옛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이하는 좋은 시절

모든 피조물이 고대하는 새로운 하늘의 운세니

 

사시장춘 신세계 불로불사 인영춘

四時長春 新世界 不老不死 人永春

새로운 세계가 오면 항상 봄철과 같고

늙지 않고 죽지 않은 사람이 늘 청춘이라.

 

천종지성 반석정 일음연수 영생수

天縱之聖 盤石井 一飮延水 永生水

하나님의 보낸 성인의 말씀(반석샘물)

한 모금 한 모금 이어 마시면 영원히 죽지 않는 생수

 

상제예언 성경설 세인심폐 영불각

上帝豫言 聖經說 世人心閉 永不覺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신 예언서인 성경 말씀을

세상 사람들이 마음을 닫고 영영 생각조차 아니 한다.

 

말세골염 유불선 무도문장 무용야

末世滑染 儒佛仙 無道文章 無用也

모든 종교가 구태의연하게 신앙을 하며 각자 자기 종교에 골몰하여

문장은 있어도 말씀이 없어 쓸모가 없다.

 

서기동래 구세진언 진사성군 정도령

西氣東來 救世眞人 辰巳聖君 正道令

서양의 운세가 동방으로 오고 구세주(진인),

용과 뱀을 잡은 성인군자가 바른 도의 말씀을 가지고 오신다.

 

천택지인 삼풍지곡 식자영생 화우로

天擇之人 三豊之穀 食者永生 火雨露

택함 받은 자의 양식 (, , 이슬)

하늘의 양식인 이 말씀(성경)을 먹는 자는 영생한다.

 

세인하지 삼풍묘리 유지자포 무지기

世人何知 三豊妙理 有智者飽 無智飢

세상 사람들이 어찌 하늘의 묘한 말씀을 알 수 있으리

그러나 지혜가 있는 자는 깨달아 배부르고, 무지한 자는 배고프다.

 

천도경전 무릉도원 차거인민 무수려

天道耕田 武陵桃源 此居人民 無愁慮

하늘의 도를 전하는 곳인 무릉도원

이곳에 거하는 자는 근심 걱정 염려가 없다.

 

태고이후 초락도 사말생초 신천지

太古以後 初樂道 死末生初 新天地

역사 이래 처음 있는 가장 즐거운 말씀

죽음이 끝나고 영생이 시작되는 새 하늘 새땅


남사고 - 격암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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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코스모스 2016.02.22 22: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옛 성인들이 예언한 글들이 이제는 무슨 말인지 깨달음이 된답니다!~ 감사합니다

  2. dltjsgml 2016.03.17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돼지고기 성분이 생쥐와 같답니다 세균이 인체내 사람몸속에 들어가면 절데로 안죽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돌아다니면서 살면서 번성을 한답니다 세균이 새끼를 낳아서 세균에 대를 이어간다합니다 소고기 세균은 사람배속에서만 살다가 자연히 죽는답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보내주신곳은 경기도 군포시 맘스유 약국에서 서울대 교수님께서 쓰신 올리브 장수 백세 책과 함께 보내주셨습니다 올리브나무는 천년을 살면서 면역력에는 최고로 좋답니다 면역력이 좋으면 암세균은 자연히 작아져서 죽는답니다 면역력이 없으면 암세균은 잠깐동안에 금방 눈덩이처럼 부풀어서 커진답니다. 성분 (成分) 이룰성자 한문은 피혈자가 부수로 들어있는 한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돼지고기와 생쥐 성분을 말할 때 쓰는 한문은 피혈자가 없는 이룰성자를 씀니다.
    이유는 돼지고기 머리 살코기 뼈 내장 들에는 피가 없습니다. 또는 돼지몸속에나 생쥐몸속에나 살고있는 세균은 같으며 하수구 썩은물 저수지 웅덩이 등에서 살고있는 악성더러운 세균입니다 피가 없는 썩은 물에서만 아주 강하게 잘사는 세균입니다 . 또 돼지고기는 먹으면 사람에 몸속에 피를 말려버림니다 활성산소 가 대사 과정에서 생겨서 뇌 온몸속 세포를 공격해서 세포가 망가지고 노화가 빨리온다는 말에 뜻은 대사는 대변을 말하고 활성산소는 방귀를 말하는것입니다 세포는 사람에 살 근육 뼈 뇌 디스크 눈 장기 갑상성 이런것들입니다. 생로병사 방송에서 보았습니다 미세혈관이 열이나면 없어지는 걸보았습니다 방귀는 독까스입니다 독까스는 열을 나게 합니다 온몸으로 열독이 퍼져서 실핏줄인 미세혈관이 없어집니다 면역력이 좋아지면 실핏줄은 다시 생겨남니다 돼지몸속에 세균은 썩게하는 세균입니다 썩은 곳에서 잘살기 때문입니다 돼지고기 먹은 대변은 독이 더 많습니다 피를 더 많이 말려서 면역력을 떨어뜨림니다 그래서 돼지고기 세균은 사람몸속에서 안죽습니다 . 소고기는 피가 많고 또 먹으면 사람한태 좋은 피가 생기면서 기운이 나고 힘이 난는걸 면역력이 좋아졌다 라고 말을 합니다 소고기는 면역력이 좋아지기 때문에 소고기 세균은 사람배속에만 있다가 자연히 죽습니다 소고기는 장조림으로 만들어 드셔야 몸에 좋습니다 기름을 안드셔야 됨니다 호르몬 과 아미노산 과갑상선 암을 유발시키는건 돼지기름 소고기 기름 멜라토니 돼지기름입니다 . 세종시절에 쓴의학서적에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평생일한댓가를 조금 베푼사람이며 사후세계 돼지고기를 먹는 사람이여서 세종대왕과 똑같은 귀신들이 돼지기름이 몸에 좋다라는 글을 많이 쓰게 해서 먹게 했습니다 좋다라고 해야 많이 먹습니다 풍수지리학에 따라서 음식 재료가 달라지고 나라도 부자되고 개인도 잘살수 있습니다 소두증 말할 때 小 [작을 소] 자를 써서 머리가 작다 독까스가 뇌에 들어가면 뇌가 쪼그라들어서 적어지면서 침해가 걸린다고 생로병사 방송또 매주금요일밤 9시50분 이비에스 명의방송에서 보았습니다 알츠하이머 침해는 옛날기억은 나고 지금 기억은 안나는 거라고 합니다 저도 알츠하이머 침해 걸렸습니다 저는 머루주스 올리브잎끌인물 포도주스 닭고기 팥 밀가루 현미쌀밥 먹고 나았습니다 또 야채 종류로만 식사 하면서 과일 많이 드시면 완치됨니다 올리브우 로 만든 음식 많이 드십시오 올리브를 먹지안고 다른음식 아무리 많이 먹어도 완치되기 힘듬니다
    (分) 분 八 [여덟 팔] 칼도 (-刀) 돼지한마리를 칼로 여덜토막을 낸다 돼지 앞다리 우측1토막 좌측1토막 뒷다리 우측1토막 좌측1토막 배부분 우측2토막 좌측2토막 자르면 여덜토막이 되며 이걸 팔각을 떳다라고 말합니다 생쥐한마리를 돼지와 똑같이 팔각을 떠서 각부이마다 세밀히 자세히 조사하고 실험을 해보았더니 돼지고기랑 생쥐고기가 고기에 결이 똑같고 고기에 맛이 똑같고 머리고기 내장 뼈 국물맛이 똑같다 돼지몸속 생쥐몸속에 살고있는 세균도 똑같다 라는 말이 바로 성분이 같다

  3. 곰팀장 2016.04.29 16: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예언을 참 좋아하는데... 잘보고 갑니다. 답방아시죠?

  4. 새나라 2018.05.17 2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도령이 바로 불교의 미륵부처요,
    기독교의 재림예수입니다.

    현재 이땅에 오셔서 활동하고 있으며 내년 2019년이면 완성됩니다.

    성경 제일 마지막인 계시록이 완성되는 때이기도 합니다 ~

    사말생초 신천지
    죽음이 없는곳입니다 ~

  5. 아름다운나라 2019.10.08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래전에
    이런 글이 있었다니
    오늘날
    정말
    모든 종교가 부패했듯이
    정치 교육 ...
    전부
    무언가 새로워져야 될듯 싶네요!!

중용과 과유불급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지지도 않은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나 정도를 뜻한다.


중(中) '속', '가운데', 또는 '들어맞다', '적중하다'의 뜻으로 쓰인다


'속'이라는 의미는 사람의 '속마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운데'는 단지 한 가운데의 고정된 지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평을 유지하면서 전체를 들어올릴 수 있는 지점이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의 중을 인간의 일에 적용해 보며 나아감과 물러남,

삶과 죽음, 남을 위하는 것과 자기를 위하는 것 등으로 나뉘는 

상반된 두처지를 어느 한쪽도 고집함이 없이 조화롭게 

어우를 수 있다는 뜻으로 넓혀진다.


결국 '중'의 의미는 이 요소들이 모두 합쳐져 조화를 이룬 상태, 

즉 '속마음'이 밖으로 나타나서

서로 상반된 두 저지를 '모두 어우를 수 있는 행동'을

 알맞게 취하는 상태이다.



그리고 '용(庸)'은 '바뀌지 않는 가장 평범한 진리'를 뜻하므로 

'중'이 곧 '용'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용의 상태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양 끝에 물건이 매달려 있는 막대를 수평으로 들어올릴 수 있는 

어떤 지점은 매달린 물건의 무게의 변화에 따라 이동하듯이,

상반된 두 의견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에 따라 바뀔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군자가 중용을 실천하는 모습은 군자답게 순수하면서 

어느 하나의 의견을 고집함이 없이 때에 따라 

가장 적절한 판단을 하는 것이니 나아가야 할 때 

나아가고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는 것이다.






과유불급 (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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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코스모스 2016.02.22 2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음에 새기고 갑니다

공자의 논어, 그리고 군자란?




논어는 중국의 사상가 공자(孔子)의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쓴 책입니다.

'유가의 성전'으로 공자와 제자들 사이의 대화, 

공자의 말씀과 행적 등 인생의 교훈이 되는

말들이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쓰여 있습니다.


한 사람의 저자가 일관되게 쓴 것이 아니라,

공자의 생애 전체에 걸친 언행을 모아 놓은 것이기 때문에 

격언이나 금언을 모아 놓은 것 같은 책입니다.


"논어"


- 공자가 제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질문에 대답하고 노론한 것

- 제자들에게 전해 준 가르침




공자는 법이나 제도보다 사람을 중시하여

사람을 통해 도덕의 이상 사회를 이루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짊'을 실천하는 지도자로 '군자'를 내세웠는데,

원래 군주의자제 라는 신분을 뜻하는 군자는

공자에 의해 이상적 인격의 소유자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공자는 자신의 이상 사회를 끝내 이루지 못했지만

고단한 삶 속에서도 도덕 사회를 이루려던

 처음의 꿈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으며, 

이러한 공자의 꿈이 녹아 있는 책이 바로 '논어' 입니다.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영국에서는 신사, 인도의 브라만, 일본에서는 무사(사무라이)

조선의 선비를 내세웁니다.




군자란? 동양의 유교에서 내세우는 이상적인 인간상입니다.

학식과 덕망이 높은 사람인데  때로는 벼슬을 한 사람을 일컫기도 했습니다.


그럼 오늘날의 군자는 많이 배우고 익혀서 겸손하고 

선량하고 게으르지 않은 사람이지 않을까요?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여색과 싸움과 물욕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젊을 때와 장성할 때와 늙어서 경계해야 할 대상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천명(天命)과 대인과 

성인의 말씀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밝힙니다.


하늘을 우러러 보고 학덕이 풍부한 대인을 따라 배우고

성인의 말씀을 배우고 익혀야 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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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코스모스 2016.02.22 2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천명(天命)과 대인과 성인의 말씀을 하며 하늘을 우러러 보고 학덕이 풍부한 대인을 따라 배우고
    성인의 말씀을 배우고 익히는 자 되어야 겠습니다. 마음에 새기고 갑니다.



<동학농민운동의 배경>



* 동학 

탐관오리의 수탈과 외세의 침입으로 나가라 혼란스러워지자,

1860년 제25대 임금 철종때 최제우가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창시한 민족 종교이다.

동학농민운동은 동학교도와 모순된 사회에서 

고통받던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근대 민족 운동이었다.


보국안민(나랏일을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함)과

제폭구민(포악한 것을 물리치고 백성을 구원함)을 

내세운 1차 농민 전쟁은 반봉건 운동,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한 2차 농민정쟁은

자주적으로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려는 반침략 운동이었다.


비록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크게 패하고 

전봉준이 체포됨으로써 실패했지만

이때 나타난 농민군의 개혁의지는

갑오개혁이 영향을끼쳤다.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개항한 뒤 

조선은 외세의 경제적 침투로 국가 재정은 바닥을 드러냈고

백성들은 가난에 허덕였습니다.

특히 일본은 싼값에 쌀을 사들여 폭리를 취하고

일본으로 대량 가져가 농민들의 불만이 커졌습니다.


이즈음 동학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인내천(人乃川) 사상을 내세우며

노비 제도를 없애고 신분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자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지금 세상이 끝나고 새 세상이 열린다는 후천 개벽사상을 내세워

억압받던  많은 농민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서양 세력과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와 백성을 구하려고 애썻습니다.

우리 고유의 문화를 지키고 철도,광산,산림 같은 

우리 자원을 수탈하는외국세력에 맞선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나중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주석이 되는 백범 김구도 

동학의 반외세 성격에 이끌려 한때 동학 교도로 활동했습니다.

이처럼 은 19세기 후반 암울한 조선의 백성들에게 희망을 불러일으켜

동학농민운동 같은 사회 개혁 운동을 이끌어 냈던 것입니다.


동학농민운동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양반 중심의 신분 사회가 무너지는 계기를 마련하는 등

 이후의 정치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 뒷날 동학농민운동의 정신은 항일 의병투쟁과 3.1운동으로 이어져 

독립운동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보국안민사상 

당시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민중으로 하여금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는데 보국안민의 주체로서

앞장서게 하는 민족적 자각의 의식화를 가져왔다.

양반지배계급이 이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백성이 스스로 나라를 구하는 힘이요 주인임을 일깨운 것이다.


*동경대전

최제우가 한문으로 쓴 동학의 경전이다.

포덕문,논학문,수덕문,불연기연 4편을 중심으로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하게 된동기와 과정, 동학의 기본 이념과 수행방법등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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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햇살.. 2016.02.03 16: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교다닐때 배웠던 동학농민운동 이야기네요 ㅎㅎ
    암울한 시대에도 힘을 내서 움직였던 옛 선조들의 모습을 보고
    오늘도 힘든 하루 속에서 용기내봅니다 ㅎㅎ

  2. 코스모스 2016.02.22 2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어려워요~~

  3. 시은 2016.04.24 1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다보니 재미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어떤 책인가요?


500권이 넘는 정약용의 방대한 저서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목민심서에는

백성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목민'이란

백성을 기르는 것, 즉 백성을 다스리는것을 뜻하며

당시 유배중이었던 정약용은 마음으로나마

백성을 다스리고자 [목민심서]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자서를 보면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지,

그가 백성들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정약용이 살았던 조선 후기는

탐관오리의 횡포가 심했고,

흉년에 전염병까지 도라 백성들의 삶이 고달팠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약용은 백성을 가장 가까이에서 다스리는 

목민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목민관으로서 백성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오랜연구 끝에 목민심서를 펴냈습니다.

목민심서에는 목민관이 임명을 받고 

고을에 부임할 때부터 임기를 마치고

고을을 떠날 때까지 수행해야 할 주요 업무와 자세가 담겨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그동안 직접보고 들었던 지방관리들의 

횡포를 관리가 아닌 백성의 입장에서 낱낱이 폭로했다는 점입니다.

 

<매조도-시집가는 딸에게 축하의 글과 매화나무에 앉은 한쌍의 새를 그려보냄>


[목민심서]에는 자기 자신을 다스리고, 나라에 봉사하며,

백성을 사랑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세가지 자세는 당시 수령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 자세이기도 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인격을 수양하고 현명하게 문제를 해결하는데

훌륭한 지침이 될 수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시련


1800년, 정약용이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 정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조정에서 권력을 잡은 세반대파를 내치기 위해 

조선의 유교 이념과 많이 다르다는 이유를 들어

1801년 천주교 박해를 시작했습니다.

이때를 [신유박해]라고 하며

많은 천주교 신자가 순교했습니다.

한때 천주교를 접했던 정약용 역시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를 가야만 했습니다.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학문연구에 몰두하였고

500여권의 책과 2500여 수의 시를 지었습니다.

1818년, 18년의 귀양살이를 끝내고

고향에 돌아온 후에도 그는 꾸준히 학문을 연구하며

책을 펴냈고, 1836년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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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까 2016.01.22 15: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약용 같은 분이 현재 대한민국에도 나왔으면 우리나라가 더 국위선양하고 있을 것 같아요....^^

  3. 제이드그린 2016.02.01 1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날 정치인이나 공무원중에도 정약용 선생님처럼 국민을 사랑하도 섬기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4. 햇살.. 2016.02.01 19: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목민심서의 글을 마음에 품어야겠습니다^^
    나를 다스리고, 봉사하며 사랑하는 마음이요 ^^

  5. 혜롱 2016.02.02 1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자세^^

  6. 박성원 2016.02.02 1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신기하다 목민심서..

  7. 유심 2016.02.02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목민심서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네요~♡♡

  8. 박성희 2016.02.02 1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목민심서에 이런 뜻이 있는 줄 몰랐는데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9. 2016.02.02 1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로운것들을 알게됬네요 감사해요 ㅎ

  10. 0 2016.02.02 12: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이 시대에 정약용이 있었다면...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11. 바나나 2016.02.02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옛 선현들의 삶을 보면 존경스러운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 태어난게 자랑스럽습니다

  12. ㅎㅅㅈ 2016.02.02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와 신기하네요~~ 정약용 같은 분이 또 생겨났음 좋겠어요

  13. 이이니니 2016.02.02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목민심서 우와..

  14. ^^ 2016.02.02 1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목민심서 라는게 엄청 대단한 거였네요^^

  15. ㅎㅁ 2016.02.02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목민심서라는 책이 백성을 생각하고 아끼시는 마음이 많이 드러나는 책인 것 같아요~ ^^

  16. 2016.02.02 1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7. 우리나라사랑 2016.02.02 14: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시대에도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목민심서와 같은 책들은 꼭 필요한 필독서인거 같아요. ㅎㅎ

  18. 함께만들다 2016.02.02 15: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치가나 나라를 맡아 관리하는사람들은 필독해야하는 책이네요.

  19. 목민심서 2016.02.02 1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감사합니다~ ^^ 잘보고갑니다~

  20. 김좌 2016.02.02 1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이네요^^

  21. 033080 2016.02.24 2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조가 좀더 오래 살았더라면 세상이 바뀌었을텐데...

독립운동가 서재필을 아시나요?





어릴적부터 영특했던 서재필


서재필은 18세에 관리가 된 후 개화파 김옥균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고

서양의 문물과 사상을 공부하며 백성의 뜻에 이끌어지는 나라 공화국이 

우리민족이 가야할 길이라고 믿게 됩니다.


그러나 갑신정변이 사흘만에 실패로 돌아갔고,

21세에 일본으로 첫 망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재필은 김옥균을 만나자 마자 그의 뛰어난 재주와 

확고한 신념에 매료되었다는 고백이 있습니다.

김옥균을 향한 존경과 경외감으로 자신에게 권유하는 

무예 즉 현대식 군사훈련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가게 된 이유였습니다.

그해 6월 미국 유학을 결심하고, 서재필은 궂은일부터 시작해 

고교와 대학과정을 마치며 의학박사까지 됩니다.


그러나 서재필 그는 한시도 고국을 잊지 않았습니다.

1919년 삼일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병원일을 접고

한국독립운동을 세계에 알리는 잡지를 만들고

집회를 열었으며 국내에 운동자금도 보냈습니다.



또한 서재필은 1949년 미국을 향한 배에 함께한 32명의 

유학생과 함께 하게 되는데요. 


어느날 서재필은 선장을 찾아가

"오늘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가장 큰 명절이요. 돈을 낼테니 파티를 열어주시요

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을 지켜본 유학생들은 배안에서 

일제히 큰 절을 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태평양 상의 만월을 바라보며 아리랑을 부르고 

대한민국 만세가 울려퍼졌습니다.


와...감동적이네요... 가슴이 찡해 옵니다. 


이렇게 서재필은 독립협회를 주도하면서 

러시아의 조선에 대한 이권 강탈을 비판하고,

독립신문 창간, 독립문 건축 등의 업적을 남기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독립협회가 대중의 정치참전권을 위한 의회설립과

자주국권, 자유민권등의 현의 6조 주장 등을 시도 할수 있게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독립운동을 후원하고 조선이 독립국임을 알리는 등

자주적인 독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폭넓게 남긴 업적은 근대사에 횟불 구실을 했습니다.


하지만 '윤치호 일기'의 내용을 보면 인간적인 면에선 냉혈한 모습도 보입니다.

윤치호가 본 서재필의 모습은 고종 앞에서 허리도 굽히지도 않고 

뻣뻣이 서서 뒷짐을 지고 말했다고 합니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에 크게 낙담한 서재필은 지병이 악화되었고

그는 큰 딸 스테파니에게 구술하여

"모두가 잘못을 깨닫고 이 어리석은 전쟁을 끝내고 

서로 협력하여민주국가 건설에 나서길 바란다"고 

간곡히 당부하는 편지를 보내고

이듬해 1월 5일 향년 88세에 타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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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이드그린 2016.01.05 14: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약 제가 저 시대에 있었어도 같은 일을 할 수있었을지 생각해보며 감사함을 느낍니다! 애국선열들의 피땀을 잊지말고 우리도 후손에게 살기좋은 세상을 물려주도록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2. 햇살.. 2016.01.05 15: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재필 같은 위인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에 더욱 감사해지네요..

  3. 진리 2016.01.05 2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감사합니다! 독립 운동가 였던 순국선열들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합니다

  4. 아까 2016.01.22 15: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제 때 그 시대에 맞는 독립 운동을 하신 분들처럼 현대를 사는 우리도 이 세태에 해야 할 일이 있겠지요?......

  5. ㅇㅇ 2016.05.13 2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갑신정변 실패로 대역죄인으로 몰려서 연좌제 형벌때문에 가족이 멸족을 당하고 본인은 고국을 떠나 망명생활을 해야됐는데 미국인 신분으로 귀국해서 통쾌하게 왕한테 복수한거죠

  6. 밀정 서재필 2017.11.13 2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쓰레기 같은 글이군요.